착각에서 빠져나오기

탐험준비

마음이 힘들어지니 다시금 에세이를 쓰려고 한다. 어느덧 저번 에세이를 쓴지 3주 지났고, 이곳에 들어온 지 두 달이 가까워진다. 초심을 유지하고 있냐고 스스로에게 묻자면 그런 척만 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내가 에세이를 쓰며 스스로를 되돌아 보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7주간 치열하게 살았다. 그리고 여전하다. 1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며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내는 시간의 질을 생각하면 분명 나는 그새 달라진게 분명한 것 같다.

개발자 커리어의 관점에서 내 스스로를 여전히 별볼일 없고 아는 것 없는 허접한 사람이다. 꿈은 원대하게 갖고 있지만 현재의 내 상황에 대해선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소위 머리 좀 컸다고 느껴졌다. 내가 처참한 기분으로 시작한 이유는 내 위치를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힘들고 갈 길도 멀지만, 어제보다 나으니까라는 위로로 매일을 버텼다. 어느 순간, 그 생각에 매몰된 것 같다. ‘나는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다.’ 나아가야 할 길이 한참 멀었는데, 고작 7주 짜리 발전에 신났다.

하지만 당장 내 앞에 놓인 과제만 봐도 내 수준을 깨달을 수 있다. 낯설기만 한 C언어로 낯선 자료구조를 만들고 이해도 안되는 웹 서버를 구축해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무력감이 당최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난 주에 쏟아 부은 시간의 결과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당장 저번주의 과제를 다시 한번 반복하라해도, 더 나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주도 배우고 익히느라 죽는 줄 알았네’가 아니라 ‘이번 주가 끝났네. 뭐가 남았지?’가 머릿 속을 지배한다.

이 괴리감이 휘몰아치는 게 참 힘들다. 난 달라졌다며 금방 익힐 것 같이 굴면서도 실은 전혀 아니니까. 여전히 무엇부터 해야할지 막막한 상황이니까. 예전에 풀었던 알고리즘 문제를 다시 풀면서 한번에 맞춘다고 뿌듯해하는 내가 참 부끄러웠다. 나름 늘었다고 자신감은 가지고 싶으면서,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에 힘들어 하는게 내 모습이라는 걸 고민 끝에 깨달았다. 지금 나의 문제는 자신감이 아니라, 도무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자만심이였다. 이 원인을 찾기까지 머릿속이 뒤숭숭하고 참 괴로웠다.

물론 스스로를 끝없이 깎아내릴 생각은 아니다. 분명 나아진 부분도 있다. 부지런히 살고 있기도 하고, 금연도 1달째 유지중이고, 살도 많이 빠졌다. 운동으로 체력도 꽤나 늘었다. 한 ‘사람’으로서는 꽤 좋은 선순환에 진입했다고 느낀다. 이 흐름에 공부도 태워주고 싶다. 매번 효율을 생각하고 다양하게 고민했던 내 방법을 스스로 무너뜨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난 매일 조금씩 하기로 했던 공부들을 놓기 시작했고, 정해놓은 시간표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번주가 급하니까. 이번 과제는 일단 완성 해야하니까. 그렇다고 정말 내가 이번주 과제를 완벽하게 했을까? 아니면 적어도 남들이 하는 만큼의 성과는 이뤄냈을까? 그랬으면 지금 괴롭지도 않았을텐데.

다시금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 내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헛똑똑이임을, 여전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걸 되새겨야 겠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해왔던 공부의 반의 반도 하지 않은 내가 같은 수준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 나의 가능성만 믿자.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라는 걸 생각하면서 지내야한다. 내가 남들과 다를거라는 생각으로 지금의 기회를 망치면 안된다.

더닝 크루거 효과. 이제 막 학습을 시작한 사람은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많은 자신감을 느끼지만 그 이후 절망의 계곡에 빠진다. 끊임없는 학습으로 탈출해 깨달음의 비탈길에 오른다.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지식의 학습과 자신감과 관련된 현상이 아니다. 사실 사람들의 예측 점수와 실제 점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 자신 중상위권에 속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나와 같은 하위권 사람은 과대평가를, 상위권 사람은 과소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개인적으로 나중에 나만의 무기 프로젝트 때, 달성하고 싶은 수준이 있다. 팀 구성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생각보단 오로지 내 스스로에게만 세운 기준. 그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물론 더 먼 미래도 그리고는 있다. 5년 뒤, 10년 뒤 막연하지만 그때 내가 어느 세상에 살고 싶은지는 알고 있다. 일희일비하며 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지만, 여유부리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1주, 하루, 한 시간을 값어치 있게 사용해야한다.

사치스런 생각도 들고, 잡 생각도 들고 여러모로 힘든 기간이였다. 그래도 주말에 가족들을 만나서 다행이였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최근 명상을 열심히 하고 있다. 다른 생각을 안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흘려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배웠다. 내 스스로를 느끼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어디로 숨을 쉬고 있는지, 내가 잡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자세가 어떤지.

나는 완벽할 수 없다. 추구하되, 닿을 수 없음에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의 나, 요즘의 나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겠다. 흐트러지는 것에 실망할 시간에, 인지하고 재정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