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지

나만의 무기 프로젝트를 앞두고

비오는 일요일 오후에 둔산동에 나와 있다보니 문득 에세이를 쓰고 싶어졌다. 이전의 글들은 항상 힘든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의도였는데 이번은 아니다. 그동안 평탄하지도 않았고 감정의 굴곡도 있었다. 링거로 버틴적도 있고, 나태해진적도 있다만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다음주에 나만의 무기 프로젝트 팀 형성 과정이 완료되고 마지막 5주간의 일정에 돌입한다. 사실 Pintos가 화요일까지 남아있지만, 마음은 이미 가있는 것도 사실이다. 리더에 지원하여 내일 면접을 보고 결정나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실력에는 자신 없지만, 팀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일은 자신있다. A to Z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팀을 꾸리는데 의견을 반영하고 싶기도 하고.. 열심히 준비한 만큼 큰 걱정은 없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오늘 오전 7시에 일어나 이불과 옷을 빨고 방과 화장실 대청소를 했다.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바빠질 것 같아서 밀린 할 일을 끝냈다. 그 동안은 배우고 공부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였다면 이젠 만들어 가야하는 과정이라 그런지 뭔가 후반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배우면서 공부해야 하지만, 프로젝트라 그런지 설레기도하고 걱정도 된다. 정글 과정동안 알고리즘, C 언어, Pintos가 시작될 때마다 걱정과 근심만 가득했다. 이번엔 처음으로 설렘도 있으니 나쁘진 않은 느낌이다. 프로젝트 자체가 처음인지라 속 편할수도 있지만.. 걱정은 다음 주가 되서나 실컷 해야겠다.

최근 협력사 설명회가 많이 있었다. 좋아 보이는 회사들이 많았다. 개발자로서 취업하게 된다면 연봉을 1순위로 두진 않겠다고 다짐한지라, 여러 면모들을 살펴보았다. 자연스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가서 열심히 배우려면, 내 시간을 투자해서 더 성장하려고 노력할려면 무엇을 하면서 재미를 찾아야 할까. 딱히 게임 말고 떠오르진 않는다. 게임 외의 일을 하더라도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개발자가 되어서 게임을 만들지 못한 채 커리어를 이어간다면 나중에 정말 크게 후회할 것 같다.

난 7살때 부터 게임을 했었다. 그 이전에도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어떤 게임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소닉 더 헤지혹 3>. 내가 태어난 94년도에 출시되어 90년대 후반에 PC판으로 나온 이 게임이 내 첫 게임에 대한 기억이다. 그 이후는 난 항상 게임을 했다. 방과 후 동네 문구점 앞에서 동전을 쌓아놓고 <스노우 브라더스2=""> 나 '동물철권'이라고 불린 <블러드 로어="">를 하다 다니던 태권도장 관장님에게 끌려가 발바닥을 맞더라도 했다. 동네 오락실에서 철권으로 처음보는 동네 형을 계속 이기다가 맞아도 했다. 실컷 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했다. 누나가 컴퓨터를 쓸 때는 TV에 연결해서 플레이스테이션1,2를 하고, 내 컴퓨터 차례에는 컴퓨터로 게임을 했다. 고등학교를 기숙사로 들어가서 시간이 줄긴 했다. 하지만 2주에 한번 주말에 집에 오면 하루종일 누나 노트북으로 게임을 했다. 대학에 합격한 후 게이밍 노트북으로 자취방에서는 밤낮으로 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입대해 배치받은 취사장의 휴게실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었다. 최근 정글 들어오기 전까지 내게 게임이 끊긴적이 있나 싶다.

하지만 어떤 게임에 ‘고인물’이 된 기억은 없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 못하는 편에 속하진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봤을 땐 항상 평범한 유저였다. 한 게임을 그리 오래하지도 않았다. 항상 새로나온 게임을 해보고, 질려서 새로운 게임을 찾고 반복했다. 과장 없이, 내가 해본 게임의 가지 수가 300개는 훌쩍 넘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미친 듯이 2주정도만 하면, 게임을 질려했다. 친구들에게 새로 찾은 게임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나였고, 항상 먼저 그만두는 것도 나였다. 그 당시 집에 있던 512MB의 램을 가진 컴퓨터로 돌아가는 온라인 게임은 안해본 게 없다. 20년 전에 장당 5만원씩 하던 플스 게임은 생일선물로나 받을 수 있었기에, 한 게임을 수백 번 플레이하고 다음에 무엇을 사달라고 할지 치열하게 몇개월간 고민했다.

커서 PC로 구동하는 콘솔 게임들을 해보니 내 취향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사냥해서 레벨을 올리고, 직업을 고르고 스킬을 배우는 MMORPG와는 맞지 않았다. 난 시뮬레이션이나 스토리가 있어야 했다. 콜 오브 듀티에서 ‘소프’가 되서 프라이스를 쫓아 다닐 때, 위쳐3에서 리비아의 ‘게롤트’가 되어 시리를 찾아 다닐때가 가장 행복했다. 워킹데드의 리의 행동을 고르고(결론은 같지만)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에서 행크 형사에 대한 태도를 고민할 때가 즐거웠다. 누군가 책으로 타인의 삶을 살아볼 때 나는 게임으로 느꼈다. 때론 힘든 일상의 위로가 되고 다른 때는 내 생각과 관점을 바꿔주었다. 책과 만화를 읽었지만 KOEI의 삼국지 10, 13으로 배운게 많았다. 대항해시대를 하면서 이때 태어났다면 내가 탐험가일지, 어느 날 날벼락처럼 침략을 받는 원주민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게임만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다음 중간 목적지 정도는 어렴풋이 잡아가고 있다. 물론 당장 인게임을 구현하는 직무를 맡긴 어렵겠지만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설령 몇년 후 그 일을 하게 되도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라 실망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투자한 노력과 시간이 헛된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았단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상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침에 명상과 독서도 하고, 운동도 다시 하고, 계획표도 열심히 쓰고 있다. 지속가능성 있게 살려고 노력중이다. 신발끈 풀린채 달려봤자 얼마나 간다고.. 최근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을 명심하며 살아야 겠다.

굳은 믿음과 우직한 인내 외에 우리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없다.

행운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다림의 대가다. 좋은 일은 믿음을 가진 살마에게 찾아오고, 더 좋은 일은 인내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며, 최고의 일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