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과 반응

나만의 무기 갖기를 마치며

나만의 무기 갖기를 마치며

2023년 7월 9일 일요일 오후 2시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주말은 기숙사 방에서 끝없이 뒹굴거리고 말겠다는 결심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왠지 또 몸이 근질거리고, 뭔가 남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강의실로 왔다. 텅 빈 강의실에서 혼자 지난 5주간을 되돌아보려니 빨리 지나간 시간에 놀랍기도 하고, 다사다난 했던 과정이 생각나며 소름도 끼치고, 실패한 발표를 생각하면 허무해지기도 한다. 나의 첫 프로젝트였고 최선을 다했던 만큼, 아직 온전히 감상이 남아있을 때 글로 적어 놓으려고 한다.

한 달 하고 일주일 전, 팀이 결성되었을 때 마음에 들었다. 원해서 함께하기를 제의했던 분은 다른 팀으로 갔지만, 그 자리로 온 팀원은 마음에 들었다. 정글 과정동안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이 과정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 나의 잘못으로 그 팀원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를 불편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수면 아래에 두고 모른체 넘어가기엔 이 프로젝트는 너무 길고 힘들었다. 몇일 후 대화로 오해와 감정을 풀었고 나의 잘못에 대해선 사과를 받아주어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 후엔 그 팀원에게 의지도 하고 도움도 받았다. 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보는 모습, 자신의 담당 과제에 몰두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미안해하고 분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 사람이였다. 누군가는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 내고, 누군가는 이것 저것 다양하게 다루지만,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또 다른 팀원은 내가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 프로젝트 전에 목표 과제물을 완성하는 것에만 몰두하던 나와 다르게, 항상 ‘왜?’를 생각하고 스스로 답변을 생각하던 사람이다. 팀 내에서 생각이 다를때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 근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누군가 혼자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만장일치를 통해 진행시키기에는 시간이 지체될 수 있지만 토의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기존의 아이디어가 더욱 단단해지기도 하고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와 친하게 지낸 친구들 2명이 팀에 있는 걸 모두 알고있기 때문에, 우리 팀에 합류하는 것이 ‘굴러들어온 돌’의 입장이 될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제안했다. 실제 같이 해보니 내 생각은 맞았다. 능동적으로 프로젝트 여러부분에 신경써준 덕분에 내가 미처 못다룬 부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론 내가 예민해진 탓에 그 주도적인 열의에 속이 상해 감정적으로 대한 적도 있어 많이 미안하다. 팀에 없었다면 나도 더욱 힘들었을 것이고 프로젝트의 완성도도 지금보다 부족한 모습이였을 것이 자명하기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정글 초반 알고리즘 때 같은 팀이 되어 친해졌던 친구들도 함께 해주었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프로젝트를 끝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팀장으로 했던 다짐도 있었고 각오도 했었지만 실제 과정은 훨씬 더 힘들었고 고달팠다. 다 때려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이렇게 책임감없고 이기적인 사람이였나 싶을 때도 많았다. 자기반성으로 바라본 나의 결점에 화가 날때마다 잘 보듬어주었다.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현명하게, 사려깊게 행동해준 덕분에 나의 부족함이 프로젝트에 퍼뜨리는 독소가 중화될 수 있었다.

이전 몇개월간 항상 내가 걱정하는 친구가 있었다. 항상 스스로의 약점에 화내고 슬퍼하고 속상해했다. 누가봐도 지나치게 많은 목표를 자임하고, 완수하지 못한 것에 자책하며 더욱 엄격하게 몰아치는 것을 반복하였다. 하지만 남에게는 언제나 자상하고 너그러웠기에, 스스로에게도 조금은 그러길 바랐다. 가장 늦게 강의실을 떠나서 아침 일찍 나와 있는 모습은 감탄과 걱정을 동시에 자아냈다. 이미 정글 과정이 가혹했기에 정신적으로 궁핍해지진 않을까, 부족한 잠으로 몸이 상하진 않을까 신경썼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는건 그 사람뿐인 것 같다. 물론 감정의 동요가 있을 수 있고, 항상 잔잔한 수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은 누구보다 단단하게 정의되어 있고, 스스로만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집이지만, 친구에게는 너무나 좋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로 인한 스트레스,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힘든 상황에서 내 감정기복까지 눈치보였을 텐데, 넓은 마음으로 배려해주고 위로해주었다. 팀을 위해 필요한 말을 할 때는 용감했다. 친구복은 참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사람이라, 내가 리더자리를 희망했을 때 신뢰를 주어서, 부족함에도 팀장으로 존중해주어서, 이성적으로 프로젝트에 필요한 말을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막내는 참 고달픈 자리이다. 모두가 평등한 곳에서 마땅한게 없어 나이가 서열의 기준이 될때는 더욱 그렇다. 항상 눈치봐야하고, 움직여야하고 바쁘니까. 어리다는 이유로 폄하되면서 평등한 기여와 책임을 요구받으니 억울할 일도 참 많다. 나이가 가장 많은 내가 그래선 안된다고 항상 생각했고 내가 의도치 않아도 그렇게 될 수있기에 항상 조심했다. 여전히 나와 함께 해주는 걸 보니 낙제는 안 당한것 같긴 하다. 가장 어리지만, 경력도 길고 아는 것도 많고 똑부러진 친구가 정말 좋았다. 나와 친하지만 늘 선을 지키는 게 잘 보여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마무리 발표 즈음 모두가 지치고 힘들 때, 프로젝트의 모양새가 많이 좋지 않았다. 일전에 몇 번 귀띔했음에도 여전히 고집스러운 나의 태도에 화나고 속상해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 오해를 쌓고 내 ‘고뿔’만 죽을 병이라고 여긴 나는 혼자 삐졌다. 다음날 내가 털어놓은 속마음에 사과를 해주었다. 뒤늦게 아전인수 그 자체인 화해의 모습에 나 또한 사과를 건넸지만 의미가 있을까 싶다. 먼저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오해를 풀어주는 어른스러움을 보면, 같은 나이대의 나는 커녕 지금의 나보다도 ‘어른’에 가까운 친구다. 이대로라면 깊고 강한 내면을 가진 친구 같지만, 사실 참 여리고 나의 농담으로 치부한 나쁜 말에 상처 받는다. 나도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했다. 배울점투성이인 친구라, 말로 표현 못하면서도 날 존중해주고 아끼는 게 행동에 드러나는 사람이라, 매번 나를 용서해주고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5주는 바라보는 것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기획과 구현을 생각하면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체력을 생각하면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첫 프로젝트로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기획한 다양한 주제들을 발표할 때는 만족스러웠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기획을 확정하고 구체화하여 구현한 것을 발표할 때는 혼란스러웠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마무리 발표때는 절망적이었고, 평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종 발표때는 만족했다. 최선을 다하기도 했고 우리 프로젝트가 갖춘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발표와는 별개긴 하지만.. 5주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지옥에 있을 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지치고 낙담했지만 오히려 그럴 때 서비스의 모양새가 더 빠르게, 잘 갖추어졌다. 위기에 강하다고 말하기보단, 방심했던 기간이 길었고 그때야 말로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했다고 말하는게 맞는것 같다. 중간발표부터 마무리발표까지 2주동안 좀 더 스스로를 몰아붙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조금 있다.

우리 프로젝트는 3개의 게임이 핵심 기능이다. 어제 협력사분들을 모셔놓고 진행한 최종 발표에서는 3개 중 2개가 작동하지 않았고 기존에 찍어뒀던 시연영상을 급하게 틀었다. 그 시연영상마저 소리와 싱크가 맞지 않았다. 엉망진창, 대참사, 최악, 개판, 어떤 말을 갖다 붙혀도 안 좋은 뜻이라면 그 상황을 묘사하기에 적절할 것이다. 5주간 팀원들의 노력이 내 발표로 인해 우습게 여겨졌을 까봐, 우리 팀은 정말 누구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좋은 사람들로만 가득한 팀인데 오합지졸로 보여졌을까봐 슬펐다. 시연에서 버그든 실수든, 내가 팀장이자 발표담당으로서 고려했어야 하는 부분이고 싱크가 불량인 영상도 내가 촬영하여 편집한 영상이였으며 대처에 따라 전화위복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팀원들께 진심으로 미안하고 속상하다. 다만, 계속 사과하는것이 팀원들의 사기만 떨어뜨리고 쉬는데 방해가 될까하여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놨다. 내가 생각했고 마음에 들었지만 팀 프로젝트로 진행하지 않은 컨텐츠를 개발하고 싶었다. 또 다른 언어나 게임 엔진으로 게임을 만들어 보고싶었고 정글 과정에서 배웠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싶었다. 복습이야 할테고, 취업준비를 위해 알고리즘 공부도 하고 면접준비도 할테지만 5주간 만든 ‘코드잇’을 조금 더 완성시키고 싶다.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포기했던 기능, 만드는데만 매몰되어 고려해야 할 것을 무시하고 만든 내 게임, 서버 등을 다듬어서 완성도를 더욱 높여보고 싶다. 내가 만든 서비스가 부끄럽진 않지만 더욱 큰 자부심을 느껴보고 싶다. 5주를 통해 배운것이 분명히 있고 나를 변화시켰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프로젝트로 배운 지식이 많다. 느낀 점도 많다. 이제 나를 바꿀 차례다. 감사한 사람에게 감사해하고, 괜히 말에 가시를 두르지 않기.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개선하기. 책에서 읽은 구절로 에세이를 마무리 해야겠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