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인 노력

나를 위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오랜만에 쓰는 에세이. 매 주 뒹굴거리며 게임만 하는 주말에서 벗어나 혼자 카페에 나와 앉았다. 특별한 일이 있는건 아니지만 최근 머릿속이 참 복잡해져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지내왔는지, 지금 여러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부분은 있는지 확인해볼까 한다.

어느덧 회사에 들어온 지 10개월이 되었다. 나름 점수를 주자면 그래도 후하게 주고 싶다. 다양한 주제의 스프린트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기능 개발을 많이 해봤다. 새로운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면서 서버도 두개나 만들었다. 인수인계 받은 서비스도 무난히 유지보수 중이다. 서비스의 방향성을 생각하며 확장성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설계했던 것, 기존에 고려하지 않았던 확장을 하기 위해 기존 데이터베이스에서 수정한 것, 히스토리를 모르는 부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오류를 수정했던 것들까지 모두 나에게 피와 살이 되주었다. 더 잘, 더 빠르게,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입사 전의 나와 비교해보면 개발자로서 구색이 정말 많이 갖춰졌음은 틀림없다.

성장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뭘까. 다채로운 경험으로 분명 할 줄 아는게 많아졌다. 내가 했던 작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있는 불안함이 남아있다. 좀 더 세심하고, 확실하게 공부했어야 하지 않을까. 더 능동적으로 해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했던 경험들이 나의 노력으로 일궈낸 것들인지, 이 자리에 있어서 나타난 행운인지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가 내 포지션에 있었어도 지금의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 같다. 만약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면 더 많은 걸 얻었을 것이다. 나는 뭘 했을까? 맡은 일, 해야할 작업에 최선을 다한 것 외에 내가 나를 위해 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20대를 낭비했다는 자책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부채감을 항상 갖고 있다. 낭비한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면, 지금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 내가 운 좋은 놈인 건 확실하다. 그만큼 지금과 앞으로의 시간을 더 소중하고 의미있게 쓰고싶다. 꼭 책 한 권을 더 보고, 한 줄의 지식을 더 외우는 게 필요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남들보다 더 자주 좋은 하루, 일주일을 보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을 뿐이다.

3분기의 마지막 달에 들어와 올해 초 세운 목표를 봤다. 거의 대부분은 이루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예상치 못하게 팀의 결원이 발생하면서 당장의 내 일에 대한 공부를 해야했다. 그래서 CS 공부보단 코드에 대한 공부, 알고리즘보단 서비스 환경 구축에 대한 공부가 우선이라고 생각해 하던 것을 멈췄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들을려고 회사 돈으로 결제한 코드 강의는 시작하지 않았고, 기존 서비스와는 다른 기술 스택이나 프레임워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기존에 있었던 것을 모방하여 나도 잘 만들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일정이 빠듯해 야근도 자주 했고, 흔히 말하는 월급 루팡짓도 안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내 할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게 다다. 남들은 안그럴까? 누구나 근무시간에 열심히 한다. 그걸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임해야할 싸움이 1시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때나 취업준비생때 처럼 모든 걸 쏟아부을 순 없지만 하루 1시간은 반드시 노력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과 같이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내가 직접 나를 위해 노력하는 한시간이 쌓여 미래가 바뀔거라는 의미다.

남은 4개월을 무엇을 해야할 지 알 것 같다. 올 한해를 정리하며 나를 위해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겠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